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야권의 서진(西進)전략, 이른바 호남 껴안기가 거침이 없다.
여권의 오랜 심장부인 호남을 향해 정서적으로 호소하고,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과거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들이 국민의힘 안에서 벌어진다. 그 중심에는 김종인 위원장이 있다.
국민의힘은 5·18민주화운동의 이념을 정강정책에 반영했다. 자연스럽게 호남의 최대 관심사인 5·18특별법 처리에도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과거 5·18을 폄훼하고 망언을 일삼았던 의원들을 감쌌던 정당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의힘은 또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 유력권인 20위 이내에서 4분의 1을 호남지역 인사로 우선 추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같은 내용의 '호남지역 인재육성을 위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우선 추천제도'를 국민통합위원회 만장일치로 의결하고, 조만간 의원총회와 비대위 의결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달 상설위원회격인 국민통합위(위원장 정운천)를 설치했으며 호남 제2 지역구가 배정된 '호남 동행' 국회의원 발대식’도 가졌다.
이들은 광주를 찾아 5·18 묘역을 참배하고 5월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도 가졌다. 지역의 주요 현안과 예산도 챙기기로 했다.
이들보다 앞서 김종인 위원장은 지난 8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그동안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소극적 대응과 일부 정치인들의 막말, 왜곡·폄훼 등에 대해 사죄했다.
수해가 났던 구례지역도 두차례나 방문해 호남민심을 흔들었다.
역대 보수정당 대표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김종인 위원장은 향후 정치구도에서 호남의 역할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위원장의 최근 발언을 들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그는 국민통합위 회의에서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목적을 달성하려면 국민 통합문제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며 "서울시 인구 구성 비율을 보면 호남지역 사람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호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1970년대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호남이 이단적 지역처럼 분열돼 보수정당이 호남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40여년 동안 지속했다"며 "우리가 실질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그(호남)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야만 진실하게 국민통합에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정치구도상 수도권의 민심은 호남의 바닥 정서가 작용할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가 표현한대로 수도권 인구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지역 출신이 호남이다.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의 35%, 경기지역 국회의원의 29%가 호남 출신이다. 서울 25개 구청장 중 24명이 민주당 소속인데, 그 가운데 상당수가 호남맨이다.
호남정서의 특성상 지역의 민심이 그대로 수도권에 반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이런 분석은 여권 내부에서도 나온다. 호남 최다선 의원인 이개호 의원(3선. 담양함평영광장성)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호남이 주류로 떠올랐고, 향후 호남의 민심이 수도권의 민심을 크게 좌우할텐데, 이런 메카니즘을 가장 꿰뚫고 있는 이가 바로 김종인 위원장이다"고 언급했다.
김종인 위원장과 국민의힘이 서진전략을 펼치는 것은 1차적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향하겠지만, 최종 타깃은 2022년 대선에 맞춰졌을 게 분명하다.
여야 진영대결 구도 속에 대권의 향배는 수도권 민심에 달려 있고, 거기엔 호남민심의 확장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이 김종인 위원장의 호남 껴안기 전략의 주요 포석이다. 나아가 본인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이 대권주자로 뛴다면 이런 호남껴안기 전략이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야권 일부에서는 광주 서석초등학교 졸업 등의 연고를 들어 김 위원장을 호남 출신 대권주자로 거론하기도 한다.
김 위원장이 지난 8월 광주를 방문했을 당시 "호남의 여론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4년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로 광주를 방문했을 때보다 훨씬 호의적이라는 배경에서다.
그 시점인 8월 둘 째 주는 박근혜 탄핵집회 이후 4년여 만에 처음으로 여당과 야당의 지지율이 역전됐던 지점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노회한 정치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관전포인트는 모든 것에 앞서 그 의도의 진정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