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재·보궐선거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지만 정작 제1야당의 지도부 '투톱'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권 일각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권 대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라는 승부수를 띄우면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의 '스텝'이 꼬인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제1야당의 투톱이 자칫 군소정당에 보궐선거 승리의 공을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 연출되자 복잡한 셈법을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문재인 정권의 임기 말 성적을 평가하는 심판 성격이 짙은데다 내후년 3월 대선의 전초전으로 볼 수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아직 군불을 때지 않고 있다.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19대 대선, 6·13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전국단위 선거에서 내리 4연패를 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여당보다 서둘러 경선룰을 다듬고 선거 준비에 나선 것과는 다른 행보다.
당 지도부는 이달 말 공천관리위원회를 출범하면서 4·7재보선 체제로 조기 전환해 선거 정국에서 주도권을 잡을 계획이었지만, 안 대표가 "결자해지", "정권교체의 교두보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워 서울시장으로 방향을 틀면서 국민의힘 지도부도 선거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할 판이다.
안 대표 뿐만 아니라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까지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야권의 무게추는 범야권 후보 단일화로 급격하게 쏠리는 양상이다. 여기에 야권 후보 단일화를 먼저 띄운 안 대표와 달리 선(先) 통합 후(後) 경선을 바라는 국민의힘 간 샅바싸움이 시작되면서 곳곳에서 후보단일화 방안을 놓고 백가쟁명식 해법이 쏟아지고 있다.
책임당원 투표와 일반시민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50대50에서 20대80으로 경선 규정을 바꿨지만, 하태경 의원을 비롯한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범야권 인사들을 더 불러 모으기 위해 완전국민경선제나 다름없는 '100% 시민경선'이나 당을 구애받지 않고 범야권 인사가 모두 참여하는 '통합경선(원샷경선)'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각에선 이럴 때일수록 김 위원장과 주 원내대표가 당내 공론을 모아 갈등 양상으로 확대될 소지를 차단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들이 나설수록 국민의힘 경선 대신 '후보단일화' 판만 한층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딜레마다.
한 야권 인사는 "국민의힘은 연말 정국을 마무리하면서 빨리 경선 국면으로 가져가려고 공천관리위를 조기에 띄운 것인데 안철수 대표가 이 분위기를 감지하고 서울시장 출마 선언으로 먼저 선수를 쳤다"며 "만약 이 국면에서 안철수 대표와 단일화를 얘기하게 되면 이쪽(국민의힘) 경선이 죽게 된다. 단일화 얘기를 하면 할수록 안철수 대표의 주도권이 강화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당 안에 서울시장 후보군은 많지만 낙승을 가져다 줄 유력 주자가 없는 시점에 지도부가 섣불리 후보단일화의 운을 떼거나 논의에 나설 경우 당내 다른 경선 주자를 고사시키는 패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안 대표의 출마 선언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고 당 차원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궤를 같이 한다.
성추문 논란으로 치러지는 보궐선거라는 점에서 야권에 유리한 정치환경은 조성됐지만, 안 대표가 국민의힘 입당 결심을 유보하고 있는 것도, 김 위원장과 주 원내대표가 안 대표에게 아직 입당을 적극적으로 구애하지 않는 것도 누구를 중심으로 단일화할 것인지, 승리의 공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수싸움에서 나온 포석으로 풀이된다.
관건은 국민의힘 안에서 안철수 대표와 대적할만한 중량감있는 후보가 등장하느냐 여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전 원내대표에게 정치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