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다."(2018년 3월1일)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2021년 3월1일)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선 대일 정책 기조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됐다. 일본에 강경 기조를 내비쳤던 3년 전과 달리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일본을 향해 대화의 손을 내밀며 양국 관계 복원에 초점을 맞췄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이 담기진 않았지만 '임기 내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기념사에 묻어나왔다는 평가다. 오는 7월 일본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북미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선 한일 관계가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구상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유화 메시지 이면에는 '한·미·일 3국 협력 구축' 공고화를 추진하는 미국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다.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한 적극 행보로 미국의 요구를 충족함으로써, 남북 및 북미 관계 진전 등 해법 찾기에 추동력을 얻겠다는 의도에서다.
문 대통령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거행된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서 7600자, A4용지 6장 분량의 기념사를 남겼다. 지난해 기념사(4800자, A4용지 4장 분량) 때 보다 분량이 훨씬 늘어났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언급한 부분을 제외하면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대한 메시지에 상당 부분 할애했다. 지난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메시지로 채워졌던 것과 달리 대외 정세 관련 메시지가 많이 포함됐다는 분석이다.
3·1절은 남북문제와 한일 관계 등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정책 방향 등이 녹아 있다. 올해 동북아 정세에 대한 정책 구상을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번 주목됐었다. 문 대통령은 당일까지도 여러 차례의 원고 탈고 작업을 거치며 대일 메시지 수위에 힘쓴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한일 관계 복원 의지를 피력하는 데 집중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며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 과거사의 올바른 인식을 전제로 한일 협력 관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했었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직시하고 인정해야만 미래 지향적 협력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존 인식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러나 이날 문 대통령은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사 문제와는 별도로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해 힘쓰자는 유화 메시지를 낸 것이다.
이는 임기 초반 문 대통령의 대일 정책 기조와 결이 상당히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광복절 축사에서 "우리가 한일 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 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며 "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 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임 후 첫해 열린 2018년 3·1절 기념사에서도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이라며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대일 정책 노선 기류 변화가 시작됐다. 올해 문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와는 별도로, 한일 관계 회복에 방점을 둔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발신하며 유화적 행보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