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동(사진 오른쪽) 호남석회공업㈜ 대표이사가 지난 2월 전남대학교에서 법전원 졸업식 때 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어렵게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만큼, 대기업과 갑을관계에서 부당한 갑질을 당하는 중소기업의 처지를 대변하고 싶어요."
공대 출신의 자원 재활용 중소기업 대표가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제10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화제다.
주인공은 신희동(52) 호남석회공업㈜ 대표이사. 신씨는 지난 2016년 3월 '인생 2막'을 준비하게 된 전환점을 맞았다.
철강 대기업으로부터 협의 없이 하도급 계약을 중도 해지하고 입찰 계약으로 전환, 하도급 대금을 소급 감액한다는 통보를 받으면서다.
신씨는 변호사를 통해 계약을 보전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선임한 변호사는 기업 거래의 세부 내용과 예상 쟁점을 낯설어했다. 변호사는 계약을 해지한 뒤 소송을 통해 손해를 보전하자고 제안했다.
신씨는 대기업의 횡포에 스스로 맞서기로 했다. 변호사 도움 없이 600여 쪽에 달하는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 신고 취지와 이유를 작성하며 '절대 갑'인 대기업에 홀로 맞섰다.
수개월 간의 협의 끝에 대기업은 계약을 원상 복구했고, 부당이득금을 반환했다.
계약 기간을 5년으로 전환하며 분쟁은 마무리됐지만, '상호 신뢰를 기초로 한 상거래'라는 신씨의 가치관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신씨는 이 일을 계기로, 2017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 등으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을 돕거나 법으로부터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법에 문외한이었던 그에게 지난 4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입학 첫해에는 모르는 법학 용어가 수두룩했다. "답이 나오는 공학과 달리 법학은 학설이 많아 이해를 쉽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회사 일도 하면서 독하게 공부했다.
쉰이 넘어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결석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다.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고 학교로 돌아와 공부하던 그를 보고 동기들은 "정말 독하다"고 했다.
백내장이 와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지만, 기말고사를 치르고 수술을 하기도 했다.
교수·동기들에게 모르는 것을 끝없이 물어보며 배우고 또 배웠다. 금속 재료 기술 개발 분야에 바쳐온 사회 경험을 법 논리와 판례를 통해 이해하게 됐고, 성취감도 컸다.
결국, 그의 끈기와 집념은 빛났다. 변호사 시험 첫 도전 만에 합격했다.
신씨는 25일 "공정거래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싶어 선택 과목을 경제법으로 정해 시험을 치렀다. 하도급 등 기업 간 분쟁은 법조문만으로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대기업의 횡포에 눈물을 흘리는 중소기업들을 돕고 싶다"며 '인생 2막'을 시작하는 포부를 밝혔다.
또 "지자체장과 지방의회가 부당한 행정으로 지자체 재원을 소비했을 경우 이를 시민의 힘으로 징벌할 수 있는 '주민 소송'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도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