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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마침표'
  • 호남매일
  • 등록 2021-03-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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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하나 황규관作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삶이 온갖 잔가지를 뻗어


돌아갈 곳 마저 배신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건


작은 마침표 하나다.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



소멸이 아니라


소멸마저 태우는 마침표 하나


비문도 미문도


결국 한 번은 찍어야 할 마지막이 있는 것,


다음 문장은 그 뜨거운 심연부터다


아무리 비루한 삶에게도 마침표 하나,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2007>



<함께읽기>마침표는 한 문장이 끝났을 때 찍는 부호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나 예전에는 문장 끝에 반드시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어쩌면 우리는 /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삶의 궁극적 목적을 명쾌하게 해명하는 두 시행. 한 문장이 끝났을 때 반드시 찍어야 하는 점 하나, 그게 바로 마침표다.


‘두루뭉술’, ‘대충’, ‘적당히’로 매듭지을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라면 그 매듭의 끝에 마감짓는 부호가 바로 마침표라 하겠다.


한 문장의 끝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말은 그 문장은 끝났지만 이어질 다음 문장을 기다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침표는 현재로선 절망일 수 있지만, 새로 시작 할 수 있음에 희망이 되기도 한다.


“삶이 온갖 잔가지를 뻗어 / 돌아갈 곳마저 배신했을 때” 돌아갈 곳마저 배신한 삶, 굴곡진 삶인지 짐작조차 못 할 만큼 격렬한 시어. 하루하루가 전쟁터였을 것 같은 시인의 삶을 잠시 대입해 본다.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 또 울었을까” 아주 가는 불빛조차 보이지 않은 절망 속에 허덕일 때 끝까지 나아가려고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비루한 삶에게도 / 마침표 하나, /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비루한 삶이라도, 아무리 절망적인 삶이라도 아직 마침표 찍을 자리가 남아 있다면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음을…



▶황규관 시인


전북 전주 출신으로 포철공고 졸업, 1993년 ‘전태일 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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