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필자의 고향은 담양이다. ‘담양’ 입안에 감도는 단어도 참 좋다. 담양을 떠난 것은 고등학교를 광주로 오면서부터다. 필자가 처음 광주 땅을 밟은 날은 봄이었다. 그때는 광주에서 마을까지 버스가 들어오지 않아 영산강을 건너 봉산면에서 광주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초등(국민)학교 4학년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쌀과 반찬거리를 들고 강 쪽으로 발길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날은 광주를 꼭 가보고 싶어 엄마 뒤를 밟았다.
한참 길을 가다 돌아본 엄마는 깜짝 놀라셨다. 영산강 보 앞에서 엄마를 불렀다. “오매 이게 뭔 일이야. 얼른 집에 가라.” 엄마는 손 사레를 치며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보를 두 개나 뛰어넘어 엄마를 따라갔다. 그제야 포기한 엄마는 나를 데리고 광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광주 서방시장에서 내렸다. 오빠가 있는 계림동 하숙집까지 가는 길에 펼쳐진 장은 내가 처음 본 시장이었다. 신발가게, 옷가게, 야채가게 등을 보면서 오빠하숙집까지 걸어가는 길은 낯선 세상이었다.
그때 세상에 나온 것 같다. 광주라는 대도시에 살면서 그리운 것은 대숲의 바람이다. 담양은 대숲이 많으며 죽세공으로 유명해 담장도 대나무다.
또한, 담양은 정자 문화로 유명하다. 소쇄원은 담양을 대표하는 민간정원으로 느린 걸음으로 만나야 한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때 양산보가 지은 건물로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광풍각, 제월당이 대숲에 둘러 싸여 있다. 소쇄원 가는 길에 대숲 바람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두 번째로 담양은 산과 물이 맑다. 영산강줄기와 삼인산, 추월산이 있어 공기가 맑다. 그렇기 때문에 광주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 광주 댐을 주변으로 정자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또한 담양은 관방천이 있다. 관방천 옆으로 흐르는 영산강은 도시인과 지역민에게 숨을 쉬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관방천 푸조 나무 가로수 길을 걸으면 노곤함을 잊을 수 있다.
세 번째로 담양은 음식이 맛있다. 떡갈비, 대통밥, 추어탕, 오리탕, 담양 국수거리도 유명하지만 아무 식당에 문을 열고 들어서도 반찬이 일곱 가지가 넘는다. 넓은 평야와 산을 가진 고장이라 양념이 풍부해 음식이 맛깔스럽다.
한편, 김훈은 ‘자전거여행’ 에서 담양을 이렇게 노래한다. ‘담양에는 대숲이 많다. 대숲은 들판 여기저기 들어서 있어 집 한 채를 품고 있는 숲도 있고 마을을 품고 있는 숲도 있다. 멀리서 보면 담양의 대숲은 들판에 흩어진 섬과 같다.’ 대숲과 담양은 잘 어울린다. 푸른빛과 물빛이 어울리는 고장, 담양이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있다. 비가 온 후에 여기저기 죽순이 돋아난다는 뜻이다. 죽순의 크기가 대나무다. 대나무는 죽순이 나와서 50일만에 다 자란다. 다 자란 대나무는 하늘을 향해 있다.
대나무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디다. 마디가 있기 때문에 세월을 딛고 버티는 힘을 얻는 것이다. 대나무가 바람에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대숲이 아름다운 담양은 바람소리가 청아한 대나무 숲을 볼 수 있다.
담양은 집 뒤란에 대숲이 있다. 대숲이 삶의 터전이었던 사람들은 대나무로 바구니를 만들고 생활도구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집 뒤뜰과 앞뜰에 대나무를 심었다.
문태준의 ‘대나무 숲이 있는 뒤란’ 의 시를 읽어본다. ‘처음 이곳에 대나무 숲을 가꾼 이 누구였을까/ 푸른 대나무들이 도열한 차기병 같다/ 장독대 뒤편 대나무 가득한 뒤란/ 떠나고 이르는 바람의 숨결을/ 공적과 파란을 동시에 읽어낼 줄 안 이 누구였을까/ 한 채 집이 할머니 귓속처럼 오래 단련되어도/ 이집 뒤란으로는 바람도 우체부처럼 오는 것이니/ 아, 그 먼 곳서 오는 반가운 이의 소식을 기다려/ 누군가 공중에 이처럼 푸른 여울을 올려놓은 것이다.’
담양이 좋은 이유는 많다. 그 중에서도 담양에는 대숲이 있다는 것이다. 담양의 대나무는 악기가 되며, 때로는 무기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나무는 삶의 도구다. 인간의 삶과 함께 한 대나무는 쓰임새가 많았기 때문에 집 뒤란의 담장이 되어 자리를 잡았다.
삶의 도구인 대나무가 점점 사라져 간다. 플라스틱 제품이 늘어나면서 대나무 숲은 소멸되어간다. 섬이 사라져 간다. 대숲이 주는 삶의 풍요로움, 담양다운 것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