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봄비가 내린 뒤 산천초목은 청량감이 배다. 길가다 보이는 식물의 색이 어떤 물감으로 이렇게 예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연두 빛이 다양한 색채로 보이는 봄 길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눈이 호사를 한다.
봄이 오면 자연이 인간을 부른다. 봄에 자연이 주는 혜택은 봄나물이다. 봄나물은 밥맛이 돋게 한다. 밥맛은 삶이다.
‘여유’ 라는 작은 옷가게가 있다. 때마침 점심때 옷가게를 들렀다. 점심을 먹던 주인장은 숟가락을 하나 더 놓은 것이 뭐가 불편하냐며 식사를 권한다.
올 봄 시금치 동이 선 나물과 장다리꽃 피기 전 열무김치가 있으니 꼭 먹어야 한다며 수저를 손에 쥐어 주어 보리가 가득 들어간 밥 한 숟가락과 생전 처음으로 동이 선 시금치나물을 먹었다. 별미였다. 지역마다 음식 재료를 활용하는 지혜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봄에 먹는 나물 중에서 시금치는 쉽게 접하는 나물이다.
그런데 꽃대가 올라온 시금치나물은 평소에 맛볼 수 없다. 평소에 먹는 맛과 다른 맛깔스러움이 있다. 열무김치도 웃자라 꽃대가 올라온 김치는 쌉싸롬한 맛이 게미져 자꾸 손이 간다.
평소 보기 힘든 음식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 맛을 이야기하게 된다. 음식은 소통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 소통의 자리에 새로운 별미를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속내를 보이는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화순 세량지를 걷는다. 이때쯤, 봄나물을 파는 할머니를 만난다.
두릅, 치나물이 펼쳐 있다. 오는 길에 땅 두릅을 샀다. 할머니는 나무두릅을 권했지만 땅 두릅을 선택했다.
두릅은 봄을 대표하는 나물이다. 봄나물의 향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두릅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나만이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먼저 땅 두릅을 준비한다. 물에 살짝 데친다. 이때 소금을 넣어 데치면 신선한 맛을 유지할 수가 있다. 데친 두릅은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초장에 찍어 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감칠 맛나게 먹는 방법은 두릅을 살짝 볶는 것이다. 살짝 데친 두릅을 꼭 들기름에 볶아야 한다. 들기름이 없다면 올리브유를 추천한다. 이때 소금을 살짝 넣어 맛을 낸다. 두릅을 차돌박이를 둘둘 말아 먹으며 요새 하는 말로 고급진 음식이다.
22년 트랜드 코리아 책을 보면,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가리켜 불안전성이 지배하는 ‘액체사회’ 라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예측과 통제가 가능했던 사회라 한다면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상태와 공적 영역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개인화된 사회다.’ 개인화된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공감력이다.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서로가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와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얻는다. 이 봄에 공감력은 나물이 아닌가 한다. 봄나물이 주는 소통은 대단하다.
벗이 전화를 했다. 갱년기를 겪으면서 남편과의 갈등을 이야기했다. 벗에게 봄나물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니?” 물었다. “두릅을 좋아해” 그렇다면 두릅으로 소고기 말이 안주를 준비해 화해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였다.
농가월령가에도 봄철 봄나물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나물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를 일부는 무쳐 먹세/ 떨어진 꽃잎 쓸고 앉아 병술을 즐길 때에/ 아내가 준비한 일품 안주 이것이로구나.’
봄철에는 나물에 술 한 잔을 놓고 소통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다. 봄나물이 부부의 삶을 연결할 것이다.
봄나물은 달콤 쌉쌀한 맛이 나 입맛을 돋우어 준다. 인생도 달콤 쌉쌀한 맛이다. 좋을 때가 있다 보면 쓰디쓴 삶을 맛을 볼 때도 있다.
우리는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마음이 파편화되어 개인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였던 가족도 코로나 상황에 분리된 삶을 살아야 했으며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때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소통과 공감이다.
인간이 공감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삶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봄나물을 데치고, 무쳐 소통의 시간을 가져보자.
온가족과 둘러 앉아 나물에 밥을 넣어 비빕밥을 만들어 먹어보자. 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