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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하듯 함께 마음을 접어보자”
  • 호남매일
  • 등록 2022-05-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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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로 한다 -박영희 作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2001년>



몇 년 전 아는 이에게서 전화가 와 술 한잔하자는 말에 나갔더니, 건강 문제로 절주하던 그가 술을 연거푸 들어 마시기에 무슨 일인가 긴장했었다.


몇 잔째 술잔을 비우고 그가 내뱉은 말은 “아내랑 이혼하겠다”는 말이었다. 그 부부는 그 말을 써선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 집은 부부싸움 한 걸 한 번도 보도듣도 못한 소문난 잉꼬부부였으니까. 사연은 생략하고. 다만 누구 한 사람이 잠시만 ‘접었더라면’ 끝났을 일을, 배신감에 삼십 년 묵은 모든 불만까지 끌어내면서 불이 확 붙었던가 본다.


그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몇 번을 얘기했고, 그리고 이틀 뒤 그의 아내를 만나 얘기했지만 결국 둘은 헤어졌다.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 접기로 한다”


이 시행 그대로 저도 요즘 아내에게 무척 섭섭하다. 전에는 고분고분 말 잘 들어주더니 나이 들어가면서 자기주장이 아주 강해졌다.


티격태격 싸울 때마다 이제 저나 나나 늙어가는 처지에 ‘내가 먼저 접어야지’ 하다가도 화려했던(?) 옛적이 생각나 또 시비가 붙는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 다 쓴 편지도 /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작가는 이미 득도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접는다’는 의미를 제대로 알뿐만 아니라 그대로 실천하고 있으니까요.


‘두 눈 딱 감고’ 서로 접을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가정이, 사회가 평화만 존재할 건데.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아주 쉬운 이치의 이 네 시행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문다.


종이배와 종이비행기가 접어야 물에 뜨고, 접어야 하늘을 난다는 이 평범한 이치를 시에 응용한 저 지혜를. 그리고 ‘종이를 접는다’와 ‘마음을 접는다’를 이어가는 저 절묘한 표현. 종이 접듯이 마음을 접을 수 있다면 갈등과 알력은 저 멀리 사라질 건 분명하다.


“살다 보면 /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 반만 접기로 한다 /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 온전히 다 접을 수 없다면 반만 접어보고, 그 반도 접기 힘들다면 반에 반만 접어보자. 그러면 분명 서운함이 조금은 가실 것 같다.


순간적으로 치미는 울화에도 잠시 한 걸음 물러설(접을)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것이다.


이는 꼭 부부 관계만이 아니라 세상사 모든 이치라 하겠다. 종이접기하듯 함께 마음을 접어보자.


▶박영희(남·1962년생) : 무안 출신으로, 1985년 [민의]를 통해 등단, 현재 르포작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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