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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름에 대한 만족
  • 호남매일
  • 등록 2022-06-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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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새벽에 읽는 맑은 시여, 그러므로 시인이란 먼 새벽 다녀가듯 그냥 머물다 가는 자리 언 새벽 머물다 가듯 그냥 다녀가는 자리. 마침내 언 새벽 흐느끼듯 다녀가고야 마는 자리’ 류근 시인의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시집에 있는 한 부분이다.


새벽에는 맑은 정신이 하루를 다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시를 읽는 시간이 새벽이라면 그 정신의 맑음은 더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을 살다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머물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이 온다.


직업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이제 무엇을 하며 살지” 우리는 삶의 선택에 대해서 고민한다. 인생은 지금부터야 하면서 인생 2모작이라는 말을 하게 한다.


인생 2모작을 시작할 때 어떤 이는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때로는 자신을 내려놓고 안식의 세계로 가는 이도 있다. 그러므로 내려놓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우연히 이계진 전 아나운서의 ‘산골농부가 된 사나이’라는 다큐를 보게 되었다. 이른 나이에 방송국에서 퇴직을 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할 때 법정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산골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 농부가 되어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하다고는 말을 한다.


이계진 아나운서는 51살에 귀거래사(歸去來辭: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감)를 선택했다. 18대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그의 말이 마음에 다가왔다.


밀짚모자를 쓰고 열심히 쇠스랑으로 밭고랑을 일구던 그는 “어휴 허리 아프다” 하면 긴 숨을 내쉬며 삶이란 ‘욕심의 반대는 무욕이 아닌 잠시 내게 머무름에 대한 만족’ 이라고 말한다.


정치판에 나온 사람들은 시대가 나를 원한다.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첫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욕심이 먼저다. 그러므로 타인의 핑계보다는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솔직하다.


행복한 나이 듦에는 자신을 내려놓는 마음수련이 필요하다. 이때 우리는 ‘머무름에 대한 만족’ 을 위해 자기조절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행복한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김두엽 할머니의 이야기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밥 먹고 오늘은 뭘 그려볼까 그렇게 책상에 앉아 한창 그림을 그리다가 점심대가 되면 밥을 먹죠. 잠깐 쉬려고 누워 있으면 도 지겨워져서 어느 샌가 붓을 손에 잡고 있어요. 그림을 그리면 안 심심하니까”


나이가 들어 화가가 된 김두엽 할머니는 평생 자식 키우고 일만 하다가 늦게 아들을 통해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소소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네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나이가 들면서 물욕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이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마음 수양을 통해 머무름에 대한 만족을 하는 이가 더 많아 세상은 둥글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해 본다.


누구나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한다. 그러나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줄 때가 있다. 그 높은 곳이 사람을 위한 일이라면,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하는 일이라면 힘들지만 가야할 길이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그 길을 가야 한다면 잠시 멈추어야 할 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퇴화 되어가는 몸을 지키고 성숙을 함께 가지고 가야 한다. 인생은 끊임없는 자기조절 과정인 것이다.


귀거래사를 선택한 이계진 전 아나운서는 경운기로 밭을 갈다가 “이 기계는 나와 같은 세월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밭 갈기가 잘 된다. 오래되고 낡은 기계에도 나름의 깊이가 있고 나이 들어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은 사람도 인생의 깊이가 있다.” 필요 없을 것 같은 것에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말을 한다. 참 좋은 이야기다.


농사를 지으며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것을 이야기로 전하니 마음에 더 새겨진다. 삶에 있어서 앞으로 전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머무름에 대한 만족으로 더 행복한 삶을 보여주어서 좋다.


머무른다는 것은 자연을 자세히 바라볼 수 있는 관조의 시간이며, 생명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또한 만족을 한다는 것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알아가는 아름다운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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