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학교 가는 길에 붉은 카네이션 꽃을 들고 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스승의 날인가 보다. 스승의 날과 부모의 날에 카네이션 꽃을 선물하는 것을 보면 스승과 부모의 은혜는 같다. 불교에서도 스승과 제자는 800 생의 인연이라고 한다. 부모 형제보다도 더 진한 인연이다.
부모 형제보다 더 진한 인연인 것은 스승은 가르침을 통하여 무명에서 벗어나 번뇌를 끊고 생사를 극복하게 인도하니 그 은혜는 무한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스승을 만난다. 스승은 지식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바른 인성과 삶의 안내자인 역할을 담당한다.
5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님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스승의 날이요. 아동학대로 신고나 안 했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작금의 시대에 스승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 교사의 권리가 많이 침해되는 현장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선생님이 수업하고 있으면 일부러 와서 툭 치고 가는 학생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장난이겠지요.” 질문에 교사의 답은 “교사가 어떻게 반응하나 보려고요.” 교사가 학생에게 뭔가 조치를 하면 학대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아 교사가 방임, 묵비권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기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교육현장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공청회를 통해서 다양한 시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스승을 만난다. 학문을 가르쳐 주신 스승,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신 스승의 은혜는 끝이 없다.
아무리 교권이 흔들리는 세상에 살아가지만 훌륭한 스승과 제자의 역사를 기억한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에는 추사 김정희와 제자 이상적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188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하는 추사 김정희에게 중국에서 구한 책을 보내준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통해 마음을 보내준다.
세한도를 보면 집 한 채 옆에 쓰러져 가는 소나무는 김정희 자신이며, 건강한 잣나무는 이상적를 비유하여 네가 있어 이렇게 힘든 세월을 버틸 수 있다는 세한도는 지금도 스승과 제자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렇듯 스승과 제자는 무릇 서로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으며 스승은 가르침을 넘어 깨달음의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삶의 깨달음을 준 스승을 생각해 보니 필자의 가장 큰 스승은 자식이었다. 자식은 키우는 과정에서 삶의 지혜를 배웠다. 이상적인 필자와 현실적인 아이는 사사건건 부딪친다. 사고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건 정리를 꼼꼼히 하는 아이와 대충 정리하는 필자 사이에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어 말다툼이 생긴다. 자식과 논쟁하는 순간, 6초 숨쉬기를 통해 나를 내려놓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 연습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벗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공부도 잘하고 삶을 잘 설계해 부러울 것 없는 벗이 자식이 하는 일마다 마음에 차지 않았다.
벗의 어머니는 “우리 딸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는디 자식은 마음대로 안된갑다야.”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자식 키우는 것은 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다.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물, 소금과 만나 장을 만드는 과정은 인고의 시간이다. 행여나 비가 들어갈까 뚜껑을 잘 닫고 열어주어야 하며 정성을 들여야 한다. 장은 1년 과정이지만 자녀는 오랜 세월 동안 애간장이 녹으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아이에게도 배운다는 말이 있다. 엄마와 아이 공놀이를 하다가 공을 잘못 던져서 엄마 얼굴에 맞았다. “얼굴에 던지면 안 돼.” 말하기도 전에 아이는 소스라치게 운다.
일반적으로 성인은 아이가 혼이 나니까 운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자신으로 인해 다친 엄마에게 미안해서 우는 것이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보이는 것만 아니라 내면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5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나의 어린 스승에게 참회의 시간을 가져본다. 그동안 내 걸음에 맞추어 세상을 향해 걷지 않았나 생각을 해 본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학원과 AI 교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더욱더 발걸음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추사 김정희와 제자 이상적이 서로 마음을 헤아리듯 스승도 학생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연습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서로의 발걸음에 맞추는 연습해야 할 것 같다. 그 걸음에 학부모도 동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