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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집애들
  • 호남매일
  • 등록 2023-06-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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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준 식 시인·작사가


육이오 총소리가 잠잠해지면서 내가 사는 산마을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산줄기 따라 두어 가호씩 모여 사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다. 호젓한 산모퉁이를 우불구불 돌아가면 먼발치에 초등학교가 보인다.


다사로이 햇볕 내리는 조용한 오후였다. 공부를 마치고 나 홀로 터덕터덕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여자애들이 끽끽댔다. 그리고는


“하낫, 뚤, 하낫, 뚤, 잘도 간다.”


“하낫, 뚤, 하낫, 뚤, 잘도 간다.”


내 발걸음에 저희들 나름대로 그럴듯한 곡조까지 붙여 외쳐댄다. 제법 구성지다.


여학생 서넛이 작당을 하고 어느 틈에 살금살금 다가온 것이다. 잘도 걷던 내 발걸음이 이상해졌다.


나도 모르게 구령에 맞아떨어지는 발걸음은 꼼짝없이 그들의 노리개였다. 저들은 더욱 신이 나서 큰소리로 외쳐댄다.


“하낫, 뚤, 하낫, 뚤, 잘도 간다.”


“우리 준식이 잘도 간다.”


그들의 외침에서 벗어나려 애를 쓸수록 내 발걸음은 내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순간 얼떨결에 소리쳤다.


“야, 이놈의 계집애들아” 그리고 돌팔매질을 하였다.


‘걸음아 날 살려라.’ 계집애들은 줄행랑을 치고 나는 당당한 개선장군처럼 가슴을 폈다.


촌뜨기 머슴아이 가슴에 불씨를 지핀 민자도 거기 끼어 있었다.


그는 엄청 예뻤다. 눈웃음과 살짝 패인 볼우물은 천하일품이었으니까.


요새도 가끔씩 내 가슴에 돌을 던져 밤잠을 설치게 하는데 그 계집애는 아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잔잔한 파도가 거꾸로 일렁인다. 어쩔 줄 몰라 더듬거렸던 내 어린 모습에 두 볼이 화끈거린다. 뜨거운 그리움의 불기운이 화닥화닥 피어오른다.


이제는 남의 각시 되고 할미가 되어 알콩달콩 잘도 살겠지만 저도 그때 일을 못 잊어 내 생각하면서 한 번쯤 웃어줬으면 좋겠다.


되돌아 갈 수 없는 그때가 눈물 나게 그립다.


가래로도 못 막을 세월에 떠밀려온 저나 나나 별 볼일 없을 터인즉, 귀갓길에 단둘이서 ‘하낫, 뚤, 하낫, 뚤’


그 장단에 맞춰 늦사리 발맞춤을 해봤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망향-



몸이야 떠났거니 마음도 떠났을까


세월에 묻었거니 정마저 묻었을까


꿈같은 세월이 갔다. 내 늙음이 섧구나



그렸던 고향 하늘 청요람 고향 산천


물소리 예 같은데 낯절은 면면이다


애동무 어디들 가고 꼴망태 둘러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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