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완연한 봄이다. 나뭇가지에 연두빛 물이 오르면 운동하기에 좋은 시기다. 따뜻해진 날씨에 발걸음도 가볍다. 버드나무에도 올리브 물빛이 솟아올랐다. 산책길에 만난 버드나무를 보면서 걷는 길이 즐겁다.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추어 물오른 나무를 바라본다.
가족과 함께 봄나들이를 나갔다. 실비가 오는 날 수제비를 먹고 구례에 있는 한옥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마당이 있는 카페에는 할미꽃, 수선화, 돌단풍이 옹기종기 피어 있다. 봄을 깨우는 빗방울 소리에 겨우내 움츠렸던 풀꽃의 모습이 청초하다.
한옥 카페 뒷마당에 있는 앵두꽃의 수줍은 미소가 아름답다. 실비가 내리는 마당을 서성이다가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본다. 앞마당에는 갖가지의 봄나물이 움트고 있다.
담장 넘어 앞집 텃밭에 아낙은 파를 다듬고 남편은 우산을 받쳐 주고 있다.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다.
며칠 전이다. 가끔 들리는 옷가게에 맛있는 참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주인장은 아픈 다리를 이끌고 머위, 미나리, 쑥부쟁이를 뜯어와 반찬을 만들었다고 숟가락을 내밀었다.
몇몇이 앉은 자리에 비집고 앉았다. 쑥부쟁이, 시금치, 미나리나물과 같이 비벼 먹으니 입안에 감칠맛이 돈다. 아직도 여린 불미나리 초무침 향이 입가에 가득하다.
봄은 오감으로 온다. 오감 중에서 봄에는 미각이 최고다. 미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봄나물이다. 봄에는 시골 장터에 나물이 지천이다. 나물을 보면 길을 멈출 수밖에 없다.
갓 나온 봄나물은 요리를 못해도 향기만으로 충분하다. 봄나물은 겨우내 묻혀 두었던 된장, 간장만 있어도 된다.
봄에 나오는 나물은 냉이, 달래, 머위, 쑥부쟁이, 쑥, 겨울 파, 자운영, 취나물, 두릅 등이다. 봄나물 중에서도 으뜸인 것은 쑥부쟁이 나물이다.
쑥부쟁이는 이름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의 영혼이 들었다는 뜻)을 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 어릴 적 기억은 쑥부랭이였다. 쑥부쟁이는 가을이면 아름다운 꽃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쑥부쟁이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간장으로 양념을 해서 먹으면 쑥부쟁이의 완연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무쳐준 나물을 먹고 자랐던 기억이 있다면 쑥부쟁이의 맛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씀바귀보다는 덜 쓰고 자운영보다는 쓴맛이 있어 봄철에 먹기 좋은 쑥부쟁이 나물에 대한 기억이다.
봄 머위는 살짝 데쳐서 간장보다는 된장에 무쳐 먹으며 제맛을 낸다. 머위 자체가 가지고 쓴맛은 아이들 입맛에는 맞지 않지만, 머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봄이면 머위의 쓴맛을 보기 위해 산과 들을 누빈다. 여린 머위는 데쳐서 가볍게 무쳐 먹지만 줄기가 자라면 껍질을 벗겨 다양한 나물을 해 먹기도 한다.
나물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어릴 적 나물을 무치면 대접에 밥, 나물, 고추장, 참기름, 들기름, 참깨 등을 듬뿍 넣어 비벼 먹었다. 봄나물이 있을 때 감칠맛 나는 나물을 먹다 보면 후-하 웃음이 나왔다.
실비가 내리는 봄날에 구례를 지나다가 유곡마을 할머니가 파는 쑥부쟁이와 머위를 한 아름 사 왔다. 물을 끓이고, 소금을 넣고 나물을 데쳤다.
봄나물은 살짝 데쳐 차가운 물에 담그고 나서 손으로 물기를 뺀 다음 올 명절에 들어온 간장과 된장을 꺼내 무쳤다. 양념 맛이 좋아서인지 즐거운 저녁 시간이 되었다.
봄은 어디선가 몰래 숨어든 바람이 봄나물에 향기를 가득 넣어 놓았나 보다.
강원도에는 눈이 내린다고 하는데 남도의 들녘에 봄이 가득 차 있다.
봄바람 속에 몰래 움튼 봄나물은 봄비와 햇살을 맞아 어느 아낙의 눈에 띄었을까? 나물 반찬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던 옷가게 주인장은 봄이면 몸이 들과 산으로 안내해 바구니 들고 봄나물을 뜯으러 간다고 한다. 어릴 적 봄이면 나물을 먹었던 원형의 기억이 들판으로 부른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 나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봄꽃이 먼저 고개를 내밀기 전에 얼굴을 보여준 연초록의 봄나물, 겨울이 머문 허허 들판에 먼저 나와 손을 흔들어 준다.
봄나물을 만나러 들판으로 나가보라. 겨울의 추위를 이겨 내고 푸르게 솟아오른 봄나물이 꽃보다 먼저 봄을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