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서 광주에 체류하며 계엄군의 무자비한 무력 진압으로 얼룩진 오월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한 데이비드 돌린저. 2010.05.16.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과 생사 고락을 함께 나누며 당시 외신기자들에게 항쟁 참상을 널리 알린 데이비드 돌린저(David L. Dolinger·한국명 임대운)가 42년 만에 회고록을 펴냈다.
13일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등에 따르면, 1980년 5·18항쟁 당시 광주의 참상을 경험한 돌린저가 펴낸 회고록 \'나의 이름은 임대운(Called By Another Name)\'이 지난 12일 출간됐다.
국문·영문판으로 동시 출간된 회고록은 돌린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직접 쓴 수기를 바탕으로 쓰였다. 번역은 최용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이 맡았다.
돌린저는 1980년 당시 미국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시민군과 함께 호흡한 \'푸른 눈의 증언자\' 중 1명으로 꼽힌다.
그는 1978년 4월부터 5·18 항쟁 직전까지 2년간 전남 영암보건소에서 결핵통제 요원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1980년 5월 봉사단측의 조기 귀국 통보를 접하고 광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직감, 5월 16일 광주를 찾았다.
시민들의 평화적 촛불 행진,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따른 민주인사 예비검속·학생 연행, 계엄군의 유혈 진압 등을 목격했다.
19일 오전 근무지인 영암으로 돌아왔지만, 참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석가탄신일인 21일 버스로 나주까지 이동해 5시간 동안 24㎞ 가량을 걸어 광주에 진입했다.
도심 곳곳에 유혈이 낭자하는 엄혹한 진압 상황 속에서도 돌린저는 매일매일 일기 형태로 기록을 남겼다.
제2차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린 24일에는 \'5·18 최후 항전지\'인 전남도청에서 시민군과 함께 하룻밤을 지새우며 라디오 영어 방송을 통한 계엄군 동향을 시민군들에게 전했다. 생사를 함께 하겠다며 최후항쟁지 도청을 지킨 유일한 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 등 동료 봉사단원 2명과 함께 뉴욕타임스 헨리 스캇 스토우크스 등 외신 기자들의 \'귀와 입\' 역할을 했다.
돌린저는 동료 봉사단원 3명과 함께 5월 27일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상무충정작전으로 숨진 시민군 시신 수습을 돕기도 했다.
항쟁이 계엄군에 의해 참극으로 막을 내린 직후, 돌린저는 평화봉사단 단원에서 해임됐다. \'파견국의 정치 상황에 중립을 지킨다\'는 규율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미 평화봉사단원 중 해임 사례는 돌린저가 유일하다.
해임 이후에도 돌린저는 \"피해자들을 돕고 싶다\"며 1년 더 머물며 5·18 진실을 둘러싼 외신 보도를 돕기도 했다. 당시 정부의 사찰 대상이 된 그는 추방되다시피 한국을 떠나야 했다. 한때 재입국이 금지되기도 했다.
돌린저는 \"진실된 역사를 알릴 때가 됐다. 당시 광주에서 보고 경험한 일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며 지난 2017년 무렵부터 회고록 집필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쟁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를 명예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두환씨의 재판 소식을 접한 돌린저는 법정 증언을 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
\'항쟁 당시 보고 들은 헬기 사격 사실을 증언하겠다\'며 입국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돌린저는 오는 16일부터 19일까지 광주에 머문다.
16일 오후 4시 전남대학교 정보마루에서 열리는 \'북 콘서트\'에 참석해 회고록 번역자인 최용주 과장과 함께 대담을 나누며 5·18 경험을 청중에게 전할 계획이다.
최정기 전남대 5·18연구소장은 \"회고록 발간과 북 콘서트 대담은 5·18민주화운동을 외국인 시각에서 새롭게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5·18이 국경을 초월해 정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속에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용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