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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
작년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와 이어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협중앙회 특별감사 중간 결과 발표는 농협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농협은 더 이상 내부를 내부에서만 다룰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대국민 사과와 함께 조직 전반의 쇄신과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국민과 조합원들은 여전히 묻는다. “이번에는 과연 다를 것인가”라는 것을.
특히 농협이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농협개혁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중앙회장 선출 방식과 지배 구조, 농·축협 조합장을 비롯한 임원 선거제도 등 오랜 기간 외부로부터 반복적으로 지적받아 온 구조적 문제를 다루겠다는 선언 자체는 분명 필요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무엇을 고치느냐’보다 ‘누가, 어떤 시각으로 고치느냐’에 있다.
30여 년간 농협이라는 조직 안에서 몸담아 온 필자로서는 ‘개혁’과 ‘혁신’이라는 단어가 위기 때마다 되풀이되어 왔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과연 농업인 조합원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켰는지 묻는다면, 솔직히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제도와 조직이 만들어졌지만, 농업인의 삶은 그만큼 나아졌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면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 어렵다.
농협 개혁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마다 그 출발점은 대개 농협의 존재 이유이거나 조직 내부의 이해관계, 혹은 외부 압박에 대한 대응에 머물렀다. 정작 농협의 존재 이유인 농업인 지원과 소득 향상은 늘 후순위로 밀려났다. 경영 성과는 강조되었지만, 협동조합으로서의 철학과 책임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농협은 협동조합이다. 그리고 협동조합의 주인은 농업인 조합원이다. 그럼에도 개혁위원회라는 이름 아래 공무원, 교수, 외부 전문가들이 ‘당연직’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정작 농업인 조합원은 들러리에 머문다면 그 개혁은 시작도 하기 전에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수십 년간 미뤄져 온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끝날 것이라는 국민들이 우려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농림축산식품부 특별감사가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문제의 핵심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에 있다는 점, 일부 사례가 아니라 조직 전반의 관리 체계와 관행이 고착화되었다는 점을 명확히 짚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번 감사는 ‘처벌로 끝낼 사안’이 아니라 ‘고쳐야 할 사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농협에 주어진 마지막 경고이기도 하다.
농협이 지금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몇 건의 비위나 부실 때문이 아니다. 협동조합이라는 특수한 지위를 앞세워 공공성과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내부 통제의 허점을 오랜 시간 방치해 온 결과이다. 그 사이 관행은 굳어졌고, 견제와 감시는 느슨해졌다. 이제 국민은 농협을 단순히 ‘농업인을 위한 조직’으로만 보지 않는다. 금융과 유통을 아우르는 거대한 조직으로서, 그에 걸맞은 책임과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
농협법 제1조는 농협의 목적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높이고, 농업 경쟁력을 강화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
이 문장은 농협이 단순한 금융·유통 기업이 아니라 공공성과 협동의 가치를 함께 짊어진 조직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지금의 농협이 과연 이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지, 국민들은 묻고 있다.
이제 농협의 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외부의 개입이 거세질수록 농협의 자율성은 악화되고, 최악의 경우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렇기에 다시는 타인의 손에 의해서 농협이 개혁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농협 스스로 문제를 도려내고, 고통을 감수하며 바뀌어야 한다.
개선의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개혁의 주체를 농업인 조합원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구색 맞추는 형식적인 참여가 아니라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해 개혁위원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겨야 한다.
둘째, 중앙회장과 임원 선출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앙회장의 권한 분산과 책임 강화를 원칙으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를 생각하고, 선출방식에서는 중앙회장을 전국 모든 농협의 주인인 조합원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이라는 획기적인 방안까지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수익 구조와 성과 평가 기준을 농업인 지원과 소득 향상에 연동해야 한다. 농협이 벌어들인 수익이 농업인에게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농협의 존재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넷째, 내부 통제와 감사 시스템을 외부의 눈높이에 맞게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협동조합이라는 이유로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되며, 국회 국정감사 수준의 상시적 검증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국민은 완벽한 조직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바뀌려는 진정성은 분명히 지켜본다. 이번 개혁이 또 하나의 선언으로 끝난다면 농협은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농업인을 최우선에 두고 협동조합의 본래 가치를 회복하는 개혁을 실천한다면, 국민은 다시 한 번 농협을 믿고 함께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갈림길이다. 농협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 조직의 미래뿐 아니라 우리 농업의 미래 역시 달라질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을 쓰는 필자는 국민이기 이전에 농협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앞으로도 이 조직 안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이번 개혁만큼은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로 이어져 농협이 다시 농업인의 편에 서 있는 조직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농협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가야 할 구성원의 솔직한 마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다.